새벽을 거슬러 오르는 시간들 사이로 말간 해가 얼굴로 위로한다. 지난 밤 쇠잔해진 기력을 추슬러 성숙하게 다가오는 얼굴, 바람이 미는 대로 태양은 붉은 깃털을 나풀대며 야위고 뽀얀 솜털 같은 가지을 흔든다. 투명한 햇살이 아롱아롱 오래오래 황홀하다.

    마른 숲에선 갈대가 스스로 우는 소리가, 꽃바람 사이로 봄의 따스한 기운들이 행복으로 다가온다. 누구나 그 런 풍경 속에는 이끌리듯 추억이라는 자리에 스스로의 마음을 가두지 않을까? 끝과 시작은 큰 의미가 없다.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시간과 풍경은 만날 수는 없다. 같은 자리에서 항상 새로 움을 만난다. 그냥 바라보고 느끼고 표현을 해보는 것이다. 나는 욕심처럼 항상 그 안에 무엇을 채우지 못해 조 바심내고 늘 허전해 한다. 어느 눈부신 날 오후, 기분 좋게 만나는 꽃향기 속에서 햇살에 반짝이며 토해내는 큰 나무 그늘 밑에 가까이 가지 않는 한, 길가의 담장 밑에서 만나는 작은 즐거움을 모르고 덤벼들지 않는 한, 그 풍경은 아무 말 없는 대신 지루하다.

    지난 가을, 밤사이 거칠게 비가 내린 아침에 시골 장터에서 만난 쩍 벌어진 석류가 얼마나 마음에 다가왔는지 모른다. 눈부신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석류에 매료되어 아무 생각없이 표현을 한다. 많은 생각은 필요하지 않 았다. 감동은 긴 시간보다는 짧은 순간에 가슴에 다가왔다고 생각을 했다. 그냥 잔잔한 감동이라고 생각을 하 지 않았을까? 특별하게 어떠한 소재를 가지고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매 순간 스쳐가는 바 람이 햇살이, 시간이 내 안에 제시해주지 않겠는가.

    나의 자리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내 길을 걸어왔는지 생각한다.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은 일들이 얼마나 많은 지 사소한 습관조차도 내 것이 아니면 지배할 수가 없다. 그냥 내 안에 길가에서 오롯이 만나는 작은 풍경들을 그려본다.

    -강남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