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양건열이미경양건열장석원이 일서성록김복영



유년의 기억을 간직한 별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김유준의 회화는 미니멀리즘에 기반 한 전체구조에 물성을 강조한 바탕처리, 그리고 그 하단 에 부분적으로 자리한 정치한 묘사(극사실에 가까운)로 그려진 형상과 문자와 숫자 등의 개입으로 이루어졌다. 외형적으로는 간결하면서도 다분히 복합적인 화면이자 다양한 방법론이 구사되어 있다는 인상이다. 이는 70년대 단색주의와 평면성에 입각한 화면이자 그림의 오브제성, 물질성의 강조, 그리고 70년대 후반 이후의 극사실주의 혹은 형상미술, 또한 또다시 대두되던 한국성이나 민족문화, 혹은 우리 전통에 대한 이해와 반영이란 측면 역시 몇 겹으로 얹혀있다. 이는 작가가 작업을 해온, 당대 한국현대미술에서 그 ‘미술’에 대한 이해를 수용해 온 지난 시간의 궤적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추이이기도 하다. 근작에 이를수록 이 종합적인 화면은 더욱 유년의 기억, 고향과 연루된 정서적 잔상 아래 추려지고 있어 보인다. 한국의 전통문화와 고향, 기억, 자연주의 같은 항목이 뿌리 깊게 드리워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롤랑 바르트는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하는 특징 중 하나가 어린 시절을 간직한다는 사실”이라고 말한다. 유년의 기억이 없는 인간은 없다. 그리고 인간만이 그 기억을 통해 한 인간의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김유준의 최근작은 무엇보다도 유년시절 겪은 자연에 대한 신체의 감각적 기억을 매개로 작업을 한다. 신체 안에 각인된 기억의 파편들을 별자리처럼 흩뿌려놓고 망실된 추억의 흔적들을 주술처럼 불러들인다.

흰색으로 점유된 바탕에 검은 원형의 점들이 둥실 떠 있다. 단색으로 칠해진 바탕 면은 실은 미묘한 질감처리로 마무리되어 있다. 다분히 ‘미니멀’ 하고 평면적인 바탕 면을 만든 후 그 위에 평면성을 약간씩 흔드는 질감, 촉각적인, 융기한 부분을 슬쩍 만들어놓은 것이다. 규사와 금강사 등을 고루 섞어 바탕에 밀착시키고 그 위에 채색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만든 밀도 높은 그 부위는 은연중 촉각성을 자극한다. 그 흔적은 화면을 유심히,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일정한 시간과 거리 속에서 화면은 다른 느낌, 맛을 자아낸다. 단색의 화면이지만 실은 무한한 변화가 있고 밋밋한 평면인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편차를 연출하고 있는 형국이다. 단순하고 밋밋할 수 있는 단색의 평면성을 흔들거나 회화성이 풍부한 질감, 화면을 연출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그런 질감, 촉각을 동반한 화면위로 새까만 원형/점이 달처럼, 알처럼 자리하고 있다. 작가에 의하면 그것은 별의 이미지다. 아득한 창공에서 빛나는 별은 너무 먼 자리에 있는, 여전히 신비스러운 자연의 메타포이기도 하고 그 누군가의 얼굴, 존재이기도 하고(마치 수화 김환기의 점묘화처럼) 추억의 사연들이기도 하다. 압도적인 그 까만 점들이 하얀 바탕에 적막하면서도 힘 있게 자리하고 있다. 아크릴로 칠해져있지만 먹색을 연상시키는 색조는 다분히 수묵화 느낌을 부여하기도 한다. 이는 하단에 위치한 사실적인 묘사로 그려진 형상들의 경우에도 해당한다. 전체적으로 수묵으로 그려진 동양화의 정서가 진하게 풍기는 작업이다.

또 다른 그림에는 하얀 색의 별, 원형의 점이 화면 가득 중심부에 박혀있다. 커다란 알이다. 윤곽선은 연필로 그어졌는데 슬쩍 뭉개져 흐릿하고 퍼져있다. 또는 질감을 자아내는 재료를 구사하는 대신 시트지 등을 원형으로 오려 부착하는 경우도 있다. 이른바 오브제를 사용한 회화이다. 화면에 밀착된 얇은 물질은 또 다른 피막을 형성하면서 하단에 그려진 자연/전통이미지와 다른 인공/현대의 느낌을 부여하고 손으로 이루어진 것과 다른 사물성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또한 물감을 대신해 인공의 재료가 금빛, 은빛으로 빛나고 있는 이 원형의 물성, 단색의 납작한 재료는 강렬한 환영을 자아내면서 평면성을 벗어나 있다. 시트지의 주름과 그 표면이 끌어들이는 외부의 풍경이 화면에 또 다른 화면, 깊이를 설정하고 연출한다.

하단에는 가늘고 여린 선으로 모종의 이미지가 슬쩍 그려져 있다. 그것은 마치 저 까만 점/별의 무게를 의식하듯, 그 존재와 한 쌍을 이루면서 위치한다. 대부분 고전에서 차용한 이미지들이다. 예를 들어 추사의 세한도의 일부(소나무, 잣나무와 집), 겸재의 인왕제색도(1751)에 그려진 인왕산, 운주사의 석불, 석탑,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일부 등이다. 고전의 일부, 혹은 그가 답사한 유적지의 어느 편린을 그대로 모사해서 그려 넣었다. 작고 깜찍하게 그려진 이미지가 감각적으로 빛난다. 그 사이로 다시 별자리가 매우 가는 선을 이루며 설핏 지나가고 빨강, 파랑의 작은 점이 찍혀 있다. 더불어 단기연호와 한자어로 ‘유준’이라 쓰여진 작가의 이름과 그림의 제목인 ‘시간기억’이 날렵하고 가늘게 적혀있다. 작고 가는 붓으로 예리하게 기술된 그 서체가 동양화 모필의 맛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이 문자들은 두툼하고 거친 질감과 대조적으로 화면위에 감각적으로 부유한다. 전체적으로 그래픽하고 디자인적으로 만져진, 압축적이며 간결하게 조율된 화면이다.

김유준의 근작은 한국인의 보편적인 정서와 감수성의 근간을 겨냥하는 작업이다. 물론 이는 한국전통문화에 대한 경험적 이해와 고향에 대한 유년의 기억을 모종의 상실로 간직한 세대에게 가능한 일이다. 동시대 젊은 세대에게 그러한 추억은 거의 부재할 것이다. 서양현대미술을 습득하고 이를 체득하는 과정을 거쳤지만 그 안에 유년의 기억, 고향의 자연에 대한 정서적 체험을 비벼 넣고 이를 다양한 방법론 안에 종합적으로 형상화해내는 김유준의 작업은 1970년대 이후의 한국현대미술의 궤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동시에 그 세대가 겪어낸 삶의 감수성 역시 눈처럼 내려앉아 있다. 눈처럼 하얀 바탕에 커다랗고 까만 점/별이 떠 있고 그 아래 잊혀진 전통문화의 흔적들이 적조하게 자리한 화면이 들려주는 전설이나 신화 같은 이야기는 마치 미당의 《질마재 신화》에 등장하는 어느 문장을 홀연 떠올려준다.


The Star that Keeps the Memories of His Childhood

Park Young-taek (Professor, Kyounggi University/ Art Critic)



Kim Yu-Jun’s painting is composed of Minimalist background that accentuates the delicate (almost hyperrealistic) depiction of figures, characters, and numbers located on the bottom of the canvas and the materiality of its structure. While simple in its appearance, it gives an impression that it is conceived of multiple pictures and methods. The issues of the predominance of monochrome and planar qualities in the 1970s, post-1970 hyperrealism or figurative art, and the resurgence of Koreanness (ethnic culture or knowledge about the tradition) are layered in his art. This practice could also be comprehended as a reflection of the path of contemporary Korean art’s rumination on the meaning of ‘art.’ In his recent works, the memories of his childhood and the emotional imageries about his hometown become more conspicuous. The subjects of Korean traditional culture, hometown, memory, naturalism gains significance.

Roland Barthes said that “the feature that distinguishes human from animal is that they possess the memories of their childhood.” There is no human without the memories of their childhood, and only human are conferred the identity of being human through the possession of their past. In his recent works, Kim considers the physical sense of nature that he experienced in his youth as the medium of his art. He scatters the particles of his memory that are imprinted in his body and magically recalls the vestiges of the lost reminiscences.

Black dots float on the white background. The texture of the surface of the monochromatic background is finished in delicate touches. On top of the ‘minimal’ and flat background, the artist enhances the texture – tangible and protruded– in some part of the picture, which more or less diminishes its planar quality. The dense part of the canvas made up of the mixture of silica and Emery powders stimulates the tactile sense, while hardly noticeable. We need to look closely at the picture to perceive it. Within a limited temporal and spatial distance from the work, we can sense many different emotions. While monochromatic, the surface transforms infinitely. Although it looks like a flat plane, the painting creates various irregularities. These facts suggest that the artist attempts to compromise the monochromatic planar quality, which could look too simple and dull, with the painterly picture full of textural features.

Over the textural and tactile picture, black circle/dot is placed like the moon or an egg. According to Kim, this shape materializes a star. The star shining in the distant sky can be read as a metaphor of nature that is still so inaccessible and mysterious, the face or existence of somebody (like Kim Whanki’s dot paintings), or personal stories and reminiscences. The overwhelming black dots stand still and dominantly on top of the white background. While painted with acrylic colors, the hue that resembles the color of black ink gives the sense of ink painting to his oil painting. The same quality can be noticed in the realistic depictions in the bottom of the canvas. Overall it strongly leaves the impression of the Oriental Ink Painting.

In another work, a large white star (a round dot) is painted in the center of the canvas. The contour is drawn with a pencil. The lines are smudged. Sometimes the artist adds a sheet of circular paper on the surface, rather than using the materials that have perceptible surface textures; it is a painting with an object. The glued thin material forms another layer in the painting, conferring the artificial/modern sense, which contrasts with nature/tradition images depicted on the bottom. Besides, the monochromatic and flat materiality of the circle that shines in gold and silver – the artificial substance that replaces paint – rejects the planar quality. The wrinkles of the paper and the external landscape that are highlighted by its surface render another screen within the screen, generating a depth to the image.

In the lower part of the picture, certain images are painted with thin and light lines, which pair with the massive star at the top of the canvas. Kim painted the historic sites based on his memories or borrowed the images from the classics: pine tree and nut pine tree in Kim Jeong-hui’s Sehando (A Winter Scene, 1844), Mt. Inwang in Gyeomjae Jeong Seon’s Inwangjesaekdo (After Rain at Mt. Inwang, 1751), Buddha statues and stone pagodas in Unjusa Temple, and part of Kim Jeong-ho’s Daedongyeojido (The Great Map of the East Land, 1861). The small and adorable images shine sensuously. Among them, constellations emerge, and blue and red dots are added to them. The artist writes the year in the Dangun era, the artist’s first name in Chinese character, and the title of the painting, ‘Time-Memory’ with thin and small brushstrokes. These characters float on the picture sensuously, forming a contrast with the thick and rough texture of the background. The picture is graphic and designed, and thus concise and harmonized.

Kim’s recent works target the common sentiments of the Korean people and the basis of this emotion. Indeed, this approach can only be conceived by the people of the generation who bear profound and empirical knowledge about Korean traditional culture and possesses the nostalgia to one’s childhood and hometown. Young people would not have the same memory. Kim studied and practiced contemporary Western art. However, he has incorporated the memories of his childhood and the emotional experiences of the natural environment of his hometown and materialized these memories using diverse methodologies. This approach reflects the progression of post-1970 Korean contemporary art and the sensibilities of the lives that the generation has gone through. On the snow-white canvas, a black dot/ star has risen. The quiet picture that delivers his stories that imply the traditional culture reminds us of some legends or myths, such as Midang Seo Jeong-ju’s Jilmajae Songs (Legend of a Tile-roofed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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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의 정체성 모색, 그 끝이 없는 작업

양건열 (미학박사)



한국 현대미술에 주어진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로 한국적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에 관한 것을 들 수 있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그 동안 다양한 조형 어법적인 방법론과 이념적인 주장들이 제기되어 왔으며,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담론임에 틀림없다. 한국의 미술은 외국의 미술과는 달라야 하며 무조건적으로 외국 사조의 모방과 추종에 벗어나 그것을 그린 작가의 고유한 민족적 정서가 스며들어야 한다는 일반적인 시작된 이 같은 논지는 상당히 오랜 기간 한국 미술에서 이론적으로나 작품 제작에 있어서 제기되어 왔다. 그런데 이러한 논지가 내포하고 있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를테면 무엇이 민족적 정서, 내지는 한국적 심성인가라는 문제이고 다음으로는 그것이 설혹 규정되었을 경우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의 방법상의 문제가 제기된다. 아울러 복잡한 문제로는 이러한 한국적 정서가 과연 사회구조의 변화와 생활 정서의 변화와 더불어 고정불변의 어떤 원형으로 주장할 수 있는가 하는 보다 심각한 질문을 제기된다

작가 김유준에게 있어 작업의 주된 패러다임은 이러한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현대인의 삶의 다양한 모습을 과연 어떻게 해석할 수 있으며, 인간의 행복 나아가 사회와 역사의 발전이라는 틀이 과연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와 닿는 것일까? 문화의 혼동과 무질서가 다원주의라는 이름 하에 모두 수용될 수 있을 것인가? 후기 산업 사회 내지는 영상 매체의 문화 시대에 회화의 기능과 그 존재의 가능성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세기말이라는 문화사적 전환과 새로운 밀레니엄의 도래를 앞둔 현시점에서 한사람의 예술인으로서 세계문화의 혼용과 새로운 유통구조의 매커니즘 속에서 작업의 방향과 그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인가? 이 같은 문제 의식들은 바로 자신의 존재를 규정짓는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임과 동시에 사회와 문화를 바라보는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적 계기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작가의 생각이 머무는 곳은 우리 미술의 고유한 특성을 찾고 그것을 보편적으로, 그리고 현대적인 감성에 맞게 표현하는 방법을 추구하는 것이다. 일단 이 같은 유형의 작업 방향에서 큰 어려움은 소재 선정이다. 다음으로는 화면을 운용하는 방법의 문제이다. 나아가 화폭의 분위기를 어떻게 현대적인 분위기에 맞게 예를 들면 전시될 공간이나, 감상자들의 변화된 시지각에 효과적으로 호소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근래의 작품들은 보다 소재가 단순화되고 화면은 명료해지고 있다. 민화적인 구도, 사물에 대한 단순한 접근, 보색대비를 통한 산뜻함, 단순하면서도 장식적인 효과가 눈에 두드러지게 보인다.

작가의 이런 제작 의도의 결과물로 나타난 작품의 전체적인 인상을 필자는 다음과 같이 피력한 적이 있다. 모든 것들이 움직임을 멈춘 채 조용하게 자리한다. 무엇인가를 갈구 하지만 분명하게 손에 붙잡히지 않는다 달이 기우는 어슴프레한 여 명에 인간의 염원을 담은 솟대가 어둠과 밝음을 연결하고 땅과 하늘을 안으려는 듯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밤하늘의 별은 인간의 수만큼 이나 많고, 그 별들은 산과 폭포, 바람과 구름을 벗삼아 세상 가득히 넘친다. 흥분한 정령들을 달래고 잠재우려는 듯이 소슬대문 너머 별들 사이에도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 장롱이며 문갑에도, 베갯잇에도, 이불에도, 병풍에도, 상보에도 그리고 조용히 잠든 어린애의 꿈속에서도 그려진다……그의 작품에는 모든 것들이 혼돈과 함께 하지만 그것은 질서 없는 절대적 어둠의 공간도 아니며 밝음의 공간도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가능성과 새로움을 간직한 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여명의 공간과 색이다. 어떤 거대한 이야기나 작가의 강한 메시지보다는 오히려 주변의 정서를 표현하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모티브를 선택하여, 제작의 방식과 화면의 구성에서 질박하면서 자연스럽게 운용하려는 절제된 표현이 역력히 드러난다. 화면에 있어서의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연출은 인위적이고 가식적인 표현의 절제, 대상들의 자유로운 배치, 현실의 공간과 상상의 공간을 넘나드는 화폭 앞에서 감상자들은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펴게된다.

우현 고유섭은 '조선 고미술의 특색과 그 전승문제'라는 글에서 한국 미술의 특징이 민예적인 것이므로 신앙과 생활과 미술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 말은 한국 미술이 서구 미술에 나타나는 장르들간의 확실한 구분과 그에 따른 장르들의 그 고유한 특성과 자율성을 추구하여 온 것과 다름을 지적한 것이며, 나아가 우리 미술이 고급예술과 저급 예술이라는 말하자면 제도 예술과 민속 예술이 명확하게 구분되기보다는 서로간의 혼용과 그 미적 가치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은 채, 생활 속의 예술과 예술 속의 생활이 서로 혼재되어 있음을 간파한 것이었다.

한국 미술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성으로 특히 자연에 순응하는 심리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동조하고 있다. 이를테면 자연에 대한 강압이 없고 자연에 대한 순응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부 묘사에 있어 치밀하지 않다는 것과 보다 큰 전체에 포용됨으로써 오히려 구수한 큰 맛을 이루게 된 것은 확실히 한국 미술의 특성 가운데 하나임은 분명하다 평론가 이일은 70년대 한국의 모노크롬 회화가 서구의 미니멀리즘을 수용하였으면서도 가장 한국적인 미의식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하였다. 특히 모노크롬 회화의 비 물질화 경향, 한국의 정신 속에 연명되는 금욕주의로서의 비물질적 항상성, 화면은 행위 하는 장이 아니라 사색하는 장으로서 형성된 것으로 파악하면서 한국의 미니멀리즘을 '범 자연주의'라고 명명하였다. 이는 우현 선생의 이론에 근거한 것으로 자연에의 순응, 자연과의 몰아적 조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전통에 대한 각성이 과거 미술의 어떤 특정한 양식 내지는 형태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정신적 재발견이며 범 자연주의적 자연관으로의 귀의에서 가능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한국 미술의 과거와 현재 속에 자연에의 순응이나 귀의의 자세는 확실히 하나의 전통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한국 고유의 근원적 정신의 발로로서 그리고 형태와 색채에 있어서도 자연에로의 귀의라는 기본적 명제를 추구하고 있는 일련의 경향이 존재한다. 한국 현대 미술의 과제는 이렇게 포착된 전통을 어떻게 현대적 언어로 번안하는가하는 방법론의 문제이며 이들 이념적, 방법론적 탐구가 우리 나라 현대 미술의 장래를 결정할 것이라는 문제는 밀레니엄의 전환기에서 매우 주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영상매체 시대의 문화의 특성은 복제성, 무국경적인 문화 유통망 시대, 매일의 일상 속에서 손쉽게 접하고 과학 기술의 발달을 가장 잘 이용하고, 매채의 호환성이 높아 유통이 손쉽다는 데 있다. 이 같은 예술생산과 유통 메카니즘의 변화와 더불어 야기되는 현상은 문화의 정체성이 심하게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수 천년 동안 형성되어온 오래된 켜들이 대중문화의 홍수와 상업성, 전파성의 영향 속에서 소멸할 운명에 처해 있다

정보화, 세계화, 산업화 주제는 이제 전세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21세기 우리 나라 문화의 지형 역시 이러한 흐름 앞에서 커다랗게 변화될 전망이다. 19세기 말 서세 동점의 시기이래,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작업은 민족적 자긍심을 확보하려는 차원에서, 혹은 식민지 지배 현실에 대항하기 위하여, 서구미술 맹목적인 동화 앞에서 민족 미술을 수립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 시점에서 새삼 한국미술의 정체성이라는 문제는 한국사회의 내부의 커다란 구조 변동이라는 형상과 함께 세계를 하나로 묶는 어떤 거대한 흐름 앞에서 다시 주요한 화두로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조형예술에서의 한국적 정체성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 것인가? 그 하나의 경우를 우리는 김유준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포착된 정서를 구체화시키려는 집요한 방법론적인 탐구와 조형 어법의 실험이 병형 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가 없고 현실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보편성을 견지하는 일이다. 한국 미술의 특성 가운데 하나로 '범 자연주의'라고 명명된 그 의미가 아직까지 명쾌하게 정의되고 있지는 않으나, 그것이 지닌 의미가 인간 중심적 사고체계로부터의 환경문제, 생태학적 사고의 진작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분명하며, 대량생산과 거대 규모의 경제적 생산력을 바탕으로 한 문화자본에 대해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해 주는 문화 다원주의의 추구, 문화를 수단으로서가 아닌 목적으로 접근하는 인식의 전환으로 연결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경계해야 할 것은 문화의 고정 불변한 어떤 실체를 찾아 그것을 고수하려는 어떤 본질주의적 접근이나 보편성을 도외시한 특수성의 집착이 가져올 위험이다. 앞서 언급한 고유섭 선생은 이 같은 문제를 이미 1940년대에 지적하였는데 이는 계속해서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조선미술의 특색을 찾아야 하고 조선미술의 전통을 살려야 한다.

다만 이때 주의하여야 할 것은 그것이 특색이요 전통이라 해도 반드시 전부 가치가 있고 또 고집하여야 할 것이 아니다. 그 곳에는 수승(秀勝)한 일면이 있는 동시에 열악(劣惡)된 일면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필 조선 미술의 특색, 조선미술의 전통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미술에 서든지 다 같이 있는 면이다덮어놓고 특색이요 전통이라 하여 고집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특색이요 전통이라는 것을 찾지 아니하였을 때와 마찬가지가 된다.






박영택양건열이미경양건열장석원이 일서성록김복영



화폭 속은 자연과 대상이 분별없이 어우러지는 평화의 공간이다.

-金裕俊의 미술세계를 찾아서-

이미경 (한국 공인회계사회 기획부)



월간지를 만들면서 늘 많은 사람들과 잦은 만남의 시간을 가지지만 화폭의 공간 속에서 영원한 자유인이요 창조자로 살아가는 화가를 만나는 것은 정신적 답사라고나 할까 사뭇 남다른 것이 사실이다.

처음에 화가 김유준의 화실을 찾은 것은 유망한 작가라는 추천으로 하는 통상적인 인터뷰 때문이었지만 그때를 잊지 못함은 역시 그의「시간과 기억」이라는 공통제목을 오롯하게 지니고 있는 그림들 때문이었다 그 당시 평범한 일상의 범주를 맴돌던 나는 녹음기와 카메라라는 현실을 들고 그의 화실의 문을 들어섰고, 발을 딛는 그 순간부터 조금씩 한국적인 정서를 토대로 인간의 염원을 고스란히 우주로 펼치고 있는 그의 작품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으며 지금은 그림과 화가를 좋아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 피카소 거리로 명명된 그의 홍대 앞 화실은 물감 특유의 알싸한 사방 벽을 둘러싼 원색이 선연한 그림들로 가득했다.

이 색다른 곳은 항상 시선을 붙들었고 다시금 마음을 붙들곤 했던 기억이 새롭다. 항상 웃는 표정이 전부일 듯 한 그이지만 그림 세계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을 때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금방 딴 사람이 되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어느 곳, 어느 때라도 항상 화가로 살아가고 싶다고 되뇌이는 그의 이 말은 내겐 시간의 영겁전에는 그가 산수문전을 만은 藝人이나 황룡사의 담에 소나무를 그린 솔거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끔 한다 이처럼 그는 고대와 현대를 접목시키는 타고 난 화가인 것이다.

그는 작은 화폭의 공간 속에서「시간과 기억」이라는 제목처럼 우리들의 영겁의 세월동안 면면히 이어온 한국의 전설과 신화의 상상과 동경의 세계와 유년의 동심의 세계로 인도하곤 한다. 김유준 그 자신도 유년의 추억과 전설 등이 자신의 정서 안에서 꿈틀대고 있음을 이야기하면서 항상 자연과 추억에 대한 경외감에 자신 그림을 출발선임을 고한다. 「글쎄요, 제 그림의 정서는 유년의 추억일 겁니다. 뒷마당인양 뛰놀던 무등산과 마을 앞 당산나무 그리고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전설과 신화, 그 모든 것이 모티브를 이룬다고 할 수 있고 거기에다가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라고 할까요?」이제 가만히 그의 화폭 속을 살펴보자.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눈을 감고도 그 산새를 확연하게 그려낼 수 있는 우리네 산과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있는 푸른 소나무가 공간을 중심을 이루고, 전설이나 신화 아니 일상 속에서도 인류의 꿈과 이상으로 숭상되던 별, 달 그리고 해가 변함없이 보인다. 한쪽에는 어쩌면 평생 한 곳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꿈을 지녔을지도 모르는 떠돌뱅이 구름도 공간 속에 붙잡아 꿈을 이뤄주고 비를 내리게 한다. 이렇듯 자연에 대한 사색과 실험을 통해 화폭 속의 공간에 구체적인 재해석으로 자연이 새롭게 드러나면 마지막으로 그는 인간의 끝없는 생의 염원을 하얀 솟대에 담아서 열린 공간 우주로 높이 띄워 보낸다. 이를 끝으로 그는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고, 비로소 그의 화폭은 자연과 대상이 분별없이 이루어지는 평화의 공간으로 자리 매김 하는 것이다.

항상 한국적 색감을 연구하고 삶 자체를 그림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사람, 김유준은 처음 내 기억에 한국적인 원색의 작가였다. 그러나 적잖이 운이 좋은 탓에 그의 색감이 풍부한 그림을 자주 대할 기회를 가졌고, 그 후에는 더욱 그의 그림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워졌다. 더욱이 무수한 중간 색상의 연구를 통해 보여지는 색상의 대담함과 정교한 색 연출에 그만 질려버리기도 했다. 이제 그런 그가 다시 전시회를 갖는다.

짧은 기간이지만 자연과 인간에 대한 푸른빛 꿈과 경외로움이 또 다시 화폭 속에 펼쳐지리라.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고대의 평화세계를 구가하면서 늘 행복한 모습인 채로 말이다. 이제 화폭 가득 서정성이 녹아 흐르는 그의 작품 세계로 여럿이 함께 떠나길 바란다. 마치 오 천년의 시간여행을 위한 문화유적의 답사를 떠날 때처럼 마음이 설렌다. 화폭을 수놓고 있는 하얀 솟대를 이제 마음마다 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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敍事的 世界에서 敍情的 世界로의 이행「時間과 記憶」시리즈에 대하여

양건열 (미학박사)



작가가 추구하는 작품의 세계란 미리 예정되어 있을 리 만무하다. 끊임없는 혼돈과 방황 그리고 모색의 소용돌이 속에서 어렵게 자기만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세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창작과정의 방황과 혼돈의 세계는 작가만의 것이기에 우리는 별로 신경 쓰지도 않을 뿐 아니라 신경 쓸 여유도 없다. 솔직히 말해 그러할 애정도 없다. 저마다의 삶이 번거롭기에 남들이 구차한 넋두리를 들어줄 만큼 여유 있는 시대상황도 아닌 듯 하다. 이 시대의 작가들 모두에게서 비극적인 성격을 볼 수 있다. 사회 전반적으로 예술문화분야에 대해서 별로 대수롭지 않게 간주하는 반문화적인 경향이 지배적이다. 자본주의 발전은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가져다주기는 하지만 상대적으로 정신적 영역에서는 황폐화를 가속화시키는 양상을 쉽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경제적 발전이 반드시 예술문화의 발전에 필요풍분 조건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어제오늘만의 이야기가 아닐 듯 싶다. 아울러 다양한 시각매체의 발전으로 '볼거리'가 다양해진 사회에서 애써 순수예술에 매달리지도 않는다. 예술품의 인기가 작품의 가치보다는 외적 분위기에 따라 쉽게 좌우되기도 한다. 작가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예술세계에서 평가와 자리 매김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작품을 제작하지 않을 때조차도 끊임없이 작품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야 한다. 또한 작품의 인기와 상업성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조화와 균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의 작가는 작품과의 대결만이 아니라 외적인 모든 것들과 대결해야 한다.

초연할래야 초연할 수 없고 따르자니 따를 수도 없는 '오늘의 운세'가 안타깝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간다. 그러면서 예술을 한다. 무서운 체념이다. 이 같은 체념에는 항상 강한 힘이 따른다 비극적 상황은 체념을 낳고 체념의 극복은 무서운 힘을 낳는다. 예술의 삶의 불완전성에서 말아된다고 하던가. 요즈음 주변에서 그런 작가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김유준도 그런 작가 가운데 하나이다. 그가 작품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생활을 지탱해 온 잡다한 일들을 정리하고 작업공간만을 영유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작업시간을 많이 갖기 위함이라고 한다. 어찌보면 저돌적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장하기도 하다. 화가라는 직업을 자랑스럽게 내세울 수 있다는 것은 그만의 배짱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예술세계가 확고하게 자리 잡혀가는 데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보면 그가 걸어온 길이 어떤 필연성과 예정된 조화의 길을 걸어온 듯이 보일 때가 있다. 그것도 단숨에 내닫는 것처럼, 하지만 작가 자신 남모르게 지샌 하얀 밤이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많을진대 어찌 다 헤어릴 수 있겠는가. 우리는 다만 그 길섶에서 주섬주섬 고독의 편린들을 주어볼 수 있을 뿐이다. 가을날 노란 은행잎을 줍듯이 말이다.

작가 김유준의 10여년 간 제작된 작품들의 과정을 보면 어떤 일관된 흐름이나 필연적인 과정이 보인다.

그 같은 흐름은 그만의 것이 아닌 비슷한 경향의 작가들이 안고 있는 공통적인 문제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70년대 후반 미술계는 하이퍼 리얼리즘, 모노크롬, 미니멀, 컨셉 추얼 등 일견 매우 다양한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그러나 한결같이 이러한 사조들은 모더니즘에서 수액을 찾고 있었다. 회화의 절대조건으로서 평면성에 대한 탐구, 일체의 문학적이고 서술적인 언술 행위에 대한 알레르기적 반응, 물질과 화면구조에 대한 문신숭배, 순수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청교도적 금욕주의, 기법과 재료에 대한 실험 등은 모더니즘이 신주 모시는 듯한 유일신으로서의 미학적 패러다임이었다. 그러나 미술의 역사는 항상 도전과 부정을 축으로 하여 변모되어 왔듯이, 무엇인가를 그리고 싶다는 일차적인 욕구가 작가들에게 일기 시작했다. 부권(父權)에 대한 도전은 개체로서의 자기 독립을 뜻하기도 하지만 조부모(祖父母)의 도움을 받기 마련이다. 그래서 집안의 큰 싸움이라는 것도 실은 가계(家系)의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유준은 현실을 텍스트로, 자연을 백과사전으로 하여, 캔버스에 형상을 실어 담았다. 말이 쉽지 미니멀 작품을 하다가 그러게 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김유준의 경우 그 같은 변화는 84년 첫 개인전 이후 시작하여 88년 제2회 개인전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그것은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내딛는 모색전의 자리였다. 90년 3회 개인전에서는 한층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화면의 구성과 처리에는 미니멀적 경향이 잔존하면서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요소들이 화면에 묘한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이때의 작품경향을 카탈로그 서문에서 이일선생은 무한 공간의 물질화에서 상상적 공간으로의 이행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이전의 작품은 공간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세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다원화된 이미지들을 담아내는 삼차원적 공간을 화면에 도입했다는 의미이다. 지금 와서 보면 그 같은 공간접근의 방식은 분명 모더니즘적 세계로부터의 일탈을 뜻하는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자신을 잉태해온 탯줄을 끊고 홀로 서기에 착수했다는 선언이었다. 미니멀적 공간으로는 표현의 영역에 한계가 주어질 수밖에 없고, 변화 없는 감수성에 자꾸 이질적으로 와 닿는 금욕의 성(城)에서 과감한 탈출을 감행했던 것이다.

일단 공간접근의 방식이 달라지면서 화면에는 고립된 이미지들이 이야기를 잃은 채 고독하게 자리잡는다. "현재적인 것과 옛것, 현실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그리고 정형적인 것과 비정형적인 것 등이…몽타주의 방식을 통해 뜻하지 않는 만남의 장을 연출해 낸다(이일)." 내가 보기에 '뜻하지 않는 만남의 장'이라는 말은 오히려 이질적인 것들이 화면에 중첩되면서 오는 뭐랄까 어설픔, 낯설음, 어줍잖음, 망설임 같은 것을 수사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한다. 민화의 형상과 교통표지판, 평면과 이미지, 물질과 공간이 상호 공존한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변화를 예감하면서도 미니멀적 영향들, 이를테면 화면의 건조함, 무개성, 냉정함, 기념비적 특성들을 보이고 있다. 그것은 4회 개인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번에 제작된 작품들은 따뜻한 공간, 대상에 대한 소박하고 천진한 응시, 자유롭고, 활달한 영상들이 우리에게 진지하게 이야기를 걸어온다. 저편에 홀로 똑 떨어져 존재하려던 완벽과 자족의 세계가 아니라 슬며시 다가와서 애정의 눈길을 보낸다. "화면에다 내면적 삶의 총체성을 담으려는"그의 바램이 이제 막 이루어지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의 화면은 공간과 물질에 대한 실험과 그 자체 자족적 실체이기를 그치고, 사색의 공간으로서 마음껏 자신의 메시지와 체취를 담아내는 활동의 장으로 바뀌었다. 개성을 잃은 서사적 주인공이 외부세계를 모험과 도전으로 일관하여 오다가, 내면적인 것으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다. 세계는 끊임없이 광활하고 무한한 저장소에 관심을 기울인다. 짓눌리고 억압된 감정을 요구했던 비개성적인 서사적 세계에서 다정 다감한 정서와 진한 인간감정의 서정적 세계로 이행하게 된다. 이제 작가는 개인의 조그마한 세계, 즉 사랑과 비운, 인생무상, 동심과 유년기의 추억, 잃어버린 전설과 신화의 세계로 나아간다. 서사적 세계의 영웅적 공간은 극히 주관화되고 내면화된 은밀한 공간으로 바뀐다. 그곳은 우리 모두의 기억과 추억이 닿는 곳이기에 작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큰 세계이다.

모든 것이 움직임을 멈춘 채 조용히 자리한다. 무엇인가를 갈구하지만 분명하게 손에 붙잡히지 않는다. 달이 기우는 어슴프레한 여명에 인간의 염원을 담은 솟대가 어둠과 밝음을 연결하고 땅과 하늘을 안으려는 듯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밤하늘에 별은 인간의 수만큼이나 많고, 그 별들은 산과 폭포 바람과 구름을 벗삼아 세상 가득히 넘친다. 흥분한 정령들을 달래고 잠재우려는 듯이 소슬 대문 너무 벽들 사이에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다. 장롱이며 문갑에도, 베갯잇에도 이불에도 병풍에도 상보에도, 그리고 조용히 잠든 어린애의 꿈속에도 그려진다.

인간을 제약하는 선이며 악, 제도며 규범, 윤리와 교육은 저 편의 이야기이다. 그 곳에는 자연과 인간의 구별이 없다. 비와 구름이 만나고, 해와 달이 함께 한다. 자아와 대상이 분별없이 어우러지는 그런 서정적인 공간이다. 길들여지고 지성화된 세계가 아니다. 기하학적 합리성과 이지적 세계에 뿌리를 둔 사실성의 인식구조가 아니다. 원근의 배열과 명암의 법칙이 지배하는 합리적인 논리의 구조가 아니다. 형상이 법(法)없이 어우러지면서 생명성을 지닌다. 모든 것이 혼돈과 함께 하지만 그것은 질서 없는 절대적 어둠의 공간도 밝음만의 공간도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가능성과 새로움을 간직한 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여명의 공간과 색이다.

작가가 사용하는 주된 안료는 아크릴이다. 이 매제는 수채화의 효과에서부터 유화에 이르는 효과까지 그 표현의 영역이 넓고 풍부하기 때문에 많은 작가들에 의해 선호되고 있다. 오랫동안 이 매제의 사용을 통하여 작가는 그 가능성과 한계를 누구보다 손에 잘 익히고 있는 것 같다. 말끔하게 뒷마무리된 미니멀적 작품에서부터 넓은 색면을 효과적으로 표현한 <공간-이미지> 시리즈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아크릴은 물과 혼합되고 맑고 선명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공간에 대한 접근방법이 달라지게 되면서 재료의 표현방법이 변화를 겪게 된다. 이를테면 이전의 표현방법으로는 무언가 인간적인 체취가 넘치고 공간 너머로 우리의 상상력을 이끌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무미건조한 표면과 얇은 안료의 층은 두텁고 뉘앙스가 풍부한 표면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한 임파스토(impasto)의 효과를 위하여 아크릴에 금분이나 돌가루를 첨가하여 바인더와 함께 혼합한다. 그리하여 화면은 작가가 담고자 한 이야기보다 더 많은 것을 간직 한다. 중첩되고 밀리고 누적되면서 화면이 긴장감을 낳는다. 이전의 형상들이 따로따로 존재하면서 고독하게 분리되었던 해체와 병열의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서로 대화를 나누는 종합과 구축의 공간으로 변한 것이다. 형상들의 대화는 보는 이에 따라 무한히 다양한 음색으로 와 닿는다. 우리는 그의 화면 앞에서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소박하고 단아한 정취는 안료의 효과와 더불어 의도되고 절제된 구도에서도 비롯된다. 앞서 그의 공간이 삼차원의 상상적 공간이라 말하였으나 오히려 그것은 아카데믹한 르네상스적 공간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작가의 사색의 장이라는 뜻에서 [그림]그런 것이다. 프리미티비즘이나 큐비즘, 민화 등에서 나타나는 '입체적인 평면'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화면의 중심 축은 다음과 같은 단순한 구조를 지닌다

근래의 작품은(3)의 구도를 기본 축으로 한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단아하면서 장식적인 느낌은 이 같은 수직 수평의 단순한 구도와 전반적으로 화면을 지배하는 좌우대칭의 안정된 구도에서 오는 것이라도 생각된다. 복잡하고 어수선한 듯하면서도 안정되고 흐트러짐이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고 하겠다. 기존의 형식(1),(2)는 평면적인 화면에서 이미지를 담기 위한 공간 모색의 구도로서 시도되었다면, (3)의 구도는 어줍잖은 삼차원적 공간요소로 일소에 제거해버리는 또 다른 평면성의 회복으로 볼 수 있다. 그 결과 미니멀적 작품에서 추구했던 평면성과는 전혀 다른 모든 것을 포용하는 평면성으로 복귀한 것이다. 더불어 색채도 활발해지고 그 표현적 성격이 강조된다. 구조를 이루는 청색계통과 황토색계통은 가장 자연스러운 색조일 뿐 아니라 상상공간의 저 밑바닥에 닿아 있는 원초적인 것과 자연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무한 공간으로서의 상상세계를 열어주는 형이상학적인 색조인 청색 삶과 자연의 근원적인 세계로 이어주는 황토색은 김유준의 서정적 세계가 추구하는 조화와 평화로움의 정서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주로 사용하는 색조가 화학적 안료와 미디움에 의존하다 보니 그 투명성과 서정성에서 충분한 효과가 약화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보다 자유롭고 서정적인 뉘앙스를 추구하는데 효과를 감소하지는 않는가 따져 보아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효과적인 안료의 사용과 바탕재(support)의 선택을 주문해 본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작가의 길이 더디고 어려운 것은 신중한 성격에도 그 원인이 있겠지만 회화자체의 형식이 지니는 탄력성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된다. 김유준의 삶과 예술의 갈등의 결과인 그의 작품을 통해 단절과 변화는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는 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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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이미지와 類比와 감촉

장석원 (미술평론가)



金裕俊은 이미지의 초월적 개념들을 좋아한다. 脫時間帶의 이미지들이 事物을 대신하여 소리지르기 시작할 때, 기분 좋은 넙죽한 웃음을 흘린다. 그의 그림은 결코 사물에의 꿈도 소유를 위한 집념도 아니다.

언제 지워버려도 좋을 사물의 標識들을 등장시킬 때, 새가 하늘을 날을 때의 기분으로 超時代性의 자유를 꿈꾸게 되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그린다는 일의 의미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무런 제약 없이 여행한다는 자유를 뜻한다. 둥실 뜬구름으로부터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는 날, 술 마시러 화실 문을 나서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면서도 마음을 사로잡는 각종의 이미지들이 시야에 들어와 박히는 것이다. 나무, 꽃, 돌, 열매, 구름 그리고 별 의미 없이 떠오르는 숫자…,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이 몸을 적시듯 캔버스 위에 또렷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정적을 맛본다.

왜 예술은 어렵게 설명되어야만 하는 것일까? 예술은 너무도 선명하게 일상 속에 나타났다 사라지곤 한다. 예술은 죽은 관념의 허물을 벗고 새롭게 우리들 눈앞으로 다가서게 된 것이다.

그가 교원대학에 강의 나가는 중 기차 안에서 읽는 옥타비오빠스의 詩集「태양의 돌」에서 이런 대목이 쓰여 있었다.

'나는 사실 시간이나 죽이려고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지나간 시간을 다시 살려고 쓰는 것도 아니다.
나는 시간이나를 통해 살도록, 되살아나도록 하기 위해 글을 쓴다.
오늘 오후는 다리 위에서 강물 속으로 태양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옥타비오빠스가 그에게 보내는 강렬한 메시지임이 틀림없다. 마치 그가 그 자신에게 보내는 수많은 메시지로서 그림을 그리듯, 소나기 같은 메시지로서 사람들에게 이미지를 뿌리듯이, 그러한 강렬한 충동을 받는 것임이 틀림없다.

金裕俊은 홍대 앞 작업실 주변을 떠나지 않는다. 그가 오리진 會員으로서 몸담아 온 과정이나 홍대를 졸업한 동료 화가들과 마주보며 작업실에 머무는 이유는 그곳에 그를 자극하는 미술의 현장이 있기 때문이다. 그를 통해서 떠오르는 각종의 이미지들은 浮標처럼 그들 사이에 끼어 든다. 때로는 분노의 표시로서 때로는 낙담과 슬픔의 흔적으로 그것들은 사람들 사이를 맴돈다. 그는 어릴 적 고향의 기억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기억의 편린들이 화려하고 강렬한 형태로 잠입해 들어온다. 우울하고 두툼한 화면 위로 조그맣게 일어서면서 그의 삶은 비로소 활기를 띠는 것이다.

회색 빛 공간 너머로 사람들이 눈이 그렇게 마주치듯이 그가 포착한 기호들은 그렇게 잠재적 역량을 키워 나간다.
그 위에 눈동자가 응시하며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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多元的 IMAGE와 想像的 空間 -金裕俊「空間-IMAGE」의世界

이 일



지난 1984년의 첫 개인전, 그리고 1988년의 두 번째에 이어 김유준은 이번에 세 번째의 개인전을 갖는다 그 동안 첫 개인전 후 약7년간에 걸쳐서 그의 회화적 편력을 돌이켜 볼 때, 그의 작업의 첫 출발을 획하고 있는 것은 그간의 그의 연작표제가 말해주고 있듯이「空間-物質」에 대한 집중적인 관심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리고 그것을 그는 닥지라는 물질을 통한 무한공간의 물질화 내지는 감각화에다 초점을 맞추어 왔었다.

그러한 김유준의 작업이 두 번째 개인전에 즈음하면서부터 커다란 변모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변모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공간-물질」에서「공간-이미지」에로의 이행이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여전히 그의 작품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공간」도 '84년 개인전 이전과 그 이후에는 실체를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84년 이후의 작품에서는 물질화된 무한공간 대신 상상적 공간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의 세 번째 개인전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의 작업이다. 그리고 거기에 새로운 요소들이 가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요소들 중에서 우선 꼽을 수 있는 것이 이미지의 다원화이다. 그리고 그 다원화도 몇 가지의 유형으로 나뉘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현재적인 것과 옛것, 현실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 그리고 정형적(定型的)인 것과 비정형적(非定型的)인 것 등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다원화된 이미지의 세계가 근자에 와서는 일종의「몽타주」방식을 통해 뜻하지 않는 만남의 장(場)을 연출해 내고 있으며, 그리하여 우리로 하여금 일상적 시간과 공간 너머의 초차원 (超次元)의 세계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초차원적인 세계는 우리에게 결코 낯선 세계는 아니며, 오히려 그 어떤 향수(鄕愁)같은 것을 느끼게 하는 친숙한 세계인 것이다.

실제로 그의 화면에 등장하는 이미지는 일상적 자연인 나무, 들판, 바위, 구름, 산, 천마도나 민화적 소재 등 우리의 옛 것을 되살린 것들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각기 차지하고 있고, 또 있어야 할 자리를 김유준은 그의 상상 공간 속에 따로따로 옮겨다 놓는데 그치지 않고 그려진 대상을 자유롭게 해석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실재(實在)의 것이든 과거의 것이든 김유준은 그 대상을 대개의 경우 단순화 내지는 문양화시키고 있으며, 그것이 그의 회화를 다분히 장식적인 것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장식화 경향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회화적인 표현성을 잃지 않고 있거니와, 그것은 장식적인 요소가 다원적인 이미지와 상상적 공간 속에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며, 또한 화면의 적절한 몽타주식 대비(對比)에 의해서 그의 화면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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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준의 요소적 회화해석

서성록 (미술평론가)



김유준의 작품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이다. 그는 그간 열심히 작업해오던 미니멀 아트류의 평면 구조적인 화면에서 이미지와 질료성이 상존하는 탈 평면적인 작품성향을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간-물질-기억"시리즈의 하나로 제작한 이 작품은 작가에게 있어서 중요한 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오랫동안 관심의 과녁에서 벗어나 있었던 작가의 심리적 표출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뿐만 아니라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하던 형상이 과감하게 도입되어 새로운 변모를 낌새를 내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5년만에 두 번째 작품전을 갖는 이번 전시회의 출품작은 단순한 화면구성과 표현적 서술성이 유난히 두드러져 보인다. 그는 화면에 몇 가지 대상들을 끌어들임으로서 어떤 분절되고 단편적인 메시지들을 전달하려고 한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 메시지란 매우 압축적이고 상징적이어서 다소간 해석의 어려움을 수반하는 것임에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는 듯하다.

필자가 여기서 주목하려고 하는 부분은 메시지의 내용이 아니라 화면의 구성관계이다. 그의 작품은 주제의 전달이라든가 내용의 표현이라는 측면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전달 내지는 표현의 본질을 구성하는 저변요소에 대한 탐구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작가가 활용하는 인물이라든가 기호, 표지판 또 기타 이미지가 어떻게 화면 내에 자리하고 있으며 왜 존재하고 있는지가 눈길이 가는 부분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각종 이미지는 "구축"이라기 보다는 "해체"에 가까운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유인즉 그 이미지들은 어떤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있다기보다는 다만 나열됨으로써 역으로 의미층을 희석시키는 하나의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미지는 그 자체의 개별성을 띠고, 단위적 이미지를 통하여 작가는 요소적인 회화해석을 꾀하려고 함을 인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기에 또 하나 덧붙여지는 사실이 그가 작품타이틀로 택하고 있는 "공간-물질-기억"이라는 개념이다. 작가는 예술이라는게 현재의 시간적 위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임을 믿고 있는 것 같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지표가 되어주고 있는 기호, 시간적 공간적 거리감에도 불구하고 연상 내지는 추억이라는 감각수단을 동원하여 이를 뛰어넘고 있는 여인의 이미지 등은 모두 회화가 지닌 특수한 성격을 보여 주려는 태도의 하나로 파악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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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준의 <시간과 기억>:그 90년대의 맥락과 관련하여

김복영 (미술평론가, 홍익대 교수)



김유준에 있어서 90년대란 아마 <시간과 기억>이란 작품세계로 요약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그의 작품명제는 그가 이 시대에 살고 있고생각과 삶을 지향시키고자 하는 것의 전부를 대표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그는, 작품명제로 빗대어말해, 시간과 기억 속에 살고 있다고나할까.

이 말은 좀 유별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그가 그렇다고 해서 기이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작품과가장 근접해서 살고 있거나 일치된 삶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데 뜻이 있다. 일찍이 90년 봄에 그는 (예술이라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시간적한계를 넘나들 수있는 제도적 장치임을 믿고 싶다)고 썼고 같은 해 여름에는 (꿈틀거리며 지나가던 달팽이의 하얀 흔적의 ..기억은 과거.현재.미래를여행하는 나의 복합공간의 이미지 세계를 이어주는고리가 되어준다)고 말한적이 있다.

앞의 말은(시간)에 대한 관심을, 그리고 후자의 말은 흔적에대한<기억>을 소중히 하고자 한다는 것을 지칭한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장위동의 집에서 나와 신촌 작업실로 출근하면서 요 90년대의 상당한 시간들을 거의 하루도 걸르지 않고 시간과 기억속의 여로를 걸어 왔다. 걸음을 걸으나 차를 타나 그의 마음은 언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달팽이의 하얀 흔적)과 같은 족적들을 생각하고 또 뒤지면서 ..살아왔다.

이럴때면 그는 저 의식 너머에서 떠오르는나무, 꽃, 돌, 기호나 숫자를 헤아리며 열매라든가 구름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것들은 과거와 현재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지표가 되기 때문이기도하거니와 추억, 기억, 예감, 기대와 같은 내면적 삶을 채우는 중요한 것들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주로 90년대 초기에는 이러한 몇몇 품목들이 작품에대거 등장하였지만 점차 해, 달, 별이 추가되었고근자에는 지리산, 설악산, 달마산, 무등산, 월출산,인수봉과 같은 산들에서 볼 수 있는 봉우리와 폭포그리고 사찰이 도입되었다. 이를테면 천왕봉, 대청봉, 토왕성폭포, 미황사(해남), 나아가서는 공룡능선이 사랑을 받고 있는가 하면 여기에도 솟대나 전통기와집, 삼각형과 원, 타원들을 겹쳐놓은 도식들이 애호되고 있다. ..이 일련의 것들은 모두 그의 기억속의 사물들로나타난다는 데 전반적인 특징이 있다. 말하자면 현실적 경험의 대상들이라기 보다는 그리운 먼 옛날의 추억들은 내재한 자태이거나 상당 부분이 바래지고 남은 흔적이나 기호(부호)의 자태로 작품 속에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빨강, 버밀리언, 불랙암바,그레이블루, 울트라마린 등 단일 색조의 넓은색면 위에 민화나 전통산수화풍의 산과 나무, 구름,해, 달이 그려지면 하늘과 땅 그 어디에서고 별자리를 상징하는 듯한, 점과 점을 잇는 선들이 허다하게 배치되고 이어서 하얀 솟대가 세워진다. 솟대주변에는 이를 보좌하는 삼각도식의 산이나 기와집, 아니면 지그재그선의 능선이 배치되는 경우가많다.

일체의 것들이 요약되었거나 도식적으로 전치되었으면 선과 색면으로 번안되어 나타내어졌다. 안료에 돌가루를 섞어 두툼한 질감의 벽면을 만든 후강한 명도대비는 물론 산뜻한 보색대비를 동원함으로써 그리고 사물들을 흡싸 우리의 옛 전승양식에서나 볼 수 있는 양식과 도상들로 배치함으로써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용이하게 옛 추억을 반추하도록 할 뿐 아니라 사물들이 배치된 공간이나 자리에있어서 자유로운 선택을 허용함으로써 시간의 정상적 연쇄에서 해방시켜 주고 있다.

그는 벌써 십수년의 세월을 이러한 맥락을 추구해 오면서 그 자신만의 기억속의 시간여행을 즐기고 있다. 그의 작품들은 그래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한 자신의 여행에 쉽게 동참케 하고 즐거움을 더해 주기도 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그가 말하고 있듯이 우리로 하여금 그의 기억여행 속에 쉽사리 이끌리도록 유인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체질적으로 제도를 싫어하며 특히 작업에 있어서합리적인 것을 싫어한다. 이성의 잣대로 해석하고모든 법칙을 알아냈다고 하지만 나아진 것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 앞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달을 정복하였으나 그 순간 우리는 달에 대한 꿈과정서를 상실해 버렸다. 자연을 정복하였으나 이제자연은 상실해 버렸다. 자연을 정복하였으나 이제 자연은 우리를 저버리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자연의 일부라 하였으나 이제는 우리가 자연의 주인임을 자처하면서도 인간화된 자연을 보고 놀라워하는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노트). 이언급은 그가 왜 시간과 기억의 여행담을 우리에게선사하고자 하는지를 말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또한 그 스스로가 어떠한 연유에서 시간과 기억을 소중히 여기고 (시간과 기억)이라는 요컨대 탈형식적작품양식을 천착하고자 했는지를 말해 주고 있다.이에 의하면 제도와 합리화가 우리로 하여금 병들게 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원인이라는 것이다. 작품은 따라서 제도와 합리화가 시행되기 이전의 세계를 엿보게 함으로써 이처럼 합리화된 세계와 대질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이고 거의 생리적으로 그의 탈합법적 기질성을 그림 속에 부어넣고자 하였다. 그 하나의 방법론으로 채택된 것이 바로 (시간)과 (기억) 속으로 자유롭게 여행하는 방법이었다.마치 발가는대로 여행하듯이 그림을 통해 초시간적으로 기억들을 합성하여 하나의 (가상적) 기호체계를 연출해 냄으로써 그 스스로가 유년시절에 경험했던 진한 추억들을 재생해 내려는 것이다. 이를 테면 그는 이러한 수법을 통해 제작한 그림 속에서 (소나무와 산허리를 감싸고 불어오는 바람소리, 부엌 저편에서 들려오는 귀뚜라미 소리, 나를 놀래고긴장하게 하였던 번개와 천둥소리)(노트)를 듣고자한다고나 할까. 그것도 아주 강렬하게 말이다. 이를 위해 그는 작업하는 방식과 방법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합리적 절차를 떠나고자 하였다.

그의 다음과 같은 실토와 고백을 들어 보라.

(하챦은 수많은 일들이 나에게 들어와 정원에 물을 뿌리듯 하얀 천 위에 물감을 뿌리면 별이 되고 하늘이 되고 나무가 되고 나비가 되어 펄럭인다. 무엇인가를 갈구하지만 분명하게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달이 기우는 어슴푸레한 여명에 인간의 염원을 담은 솟대가 어둠과 밝음을 연결하고 땅과 하늘을 안으려는듯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밤하늘의 별들은 인간의수만큼이나 많고 그 별들은 폭포,바람, 구름을 벗삼아 세상 가득히 넘친다. 흥분한 정령들을 달래고잠재우려는 듯이 소슬대문 너머 벽들 사이에 그림이 그려진다.)(노트).

누군가가 사람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 자신과 사람들을 결국 구원하려는 행위라 했던가. 김유준 또한 적막의 고통이 자신을 괴롭히고 희망과 실망, 그리움과 동경, 혼돈과 방황속에 빠져 있는 자신을 구원하고자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기억들을 그림으로써,그리고 시간의 초맥락적 융합과 이반(離斑)을 기도함으로써 가슴 속 깊은 곳으로 스며드는 행복감을느낀다고 말한다.

따라서 90년대의 김유준이 그리는 세계는 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구원의 행복감을 유발할 수 있는 기억의 초시간적 융합을 기도하려는 데 뜻이 있다. 그럼으로해서 그의 세계는우리를 제약하는 선이나 악, 제도나 규범, 윤리나교육을 넘어선 저편의 세계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그의 그림에는 자연과 인간의 구별이 없으며 비와 구름이 만나고 해와 달이 함께 한다. 일체의 합리적 분간과 변별을 떠난 초월적 세계를 보여준다.

84년에 첫 개인전을 가진이래 해를 거르지 않고꾸준히 발표해 오고 있는 그의 작품 세계가 마침내좀더는 확립된 양식과 방법을 구비하고 있어 무척반갑다. 그런 만큼 우리는 이전보다 더 새롭고 진솔한 생의 본질적 기쁨을 그의 작품들을 통해서 느낄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