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우 작가 ‘봄꽃’展
최석우 초대전, 서울 갤러리 아트셀시
김은숙 (셀시우스/갤러리아트셀시 디렉터)
나는 사실 식물계에 무식하다. 아니 내가 아는 것은 몇이나 될까... 식물의 영혼, 식물의 에너지. 그들이 발화하며 전하고픈 그 무엇을 내식으로 짐작할 뿐이다.
2021년 3월의 어느 날, 나는 최석우가 눈과 마음에 담았던 꽃들에 둘러싸여 있다. 당신을 둘러싼 것들은 무엇인가, 그 안에서 안녕한지 안부를 건네고 싶다.
겨울을 이기고 피어난 꽃이지만 곧 지고 말겠지.
때마다 떠날 이유를 만들며 살아가는 인간. 한결같은 이름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식물은, 꽃은 변명하지 않는다. 이유를 만들지도 않는다. 충분히 빛나고 옹골찬 씨앗 하나로 단단해지거나 열매로 성숙해질 뿐 지난 시간을 헛되이 만들지 않는다.
피터 톰킨스의 '식물의 정신세계'는 그들의 영혼, 능력을 비롯한 오묘함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놓은 인상 깊은 책이다. 식물에 대한 무지에서 깨어난 마음가짐이 변화하게
된 중요한 책이기도 하다.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물계 중 유독 식물은 늘 함께하면서도, 몰라도 너무나 몰랐다는 자성을 했던 계기가 되었다. 하긴 내 마음조차 모르면서
안다고 하는 오만은 늘 인간의 착각이리라. 인간만이 유독 다른 계 界와 다른 종 種에 자기만의 생각으로 사실과 같거나 말거나 감정과 생각을 덧입히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꽃은 번식을 위한 생식기관이다. 화려한 색깔, 달달한 꿀 같은 샘, 갖가지 향기로 다른 종을 유혹한다. 꽃도 없이 열매를 맺는다고 해서 무화과라고 하는데 내 고향 목포에는
한 집 걸러 지천이었던 것이 무화과나무였다.
요즘처럼 과일이 달거나 오래가진 않았지만 잘 익으면 절로 벌어지는 꿀 같은 무화과를 먹으며 하느님은 인간을 위해 식물을 선물로 주셨다는 내 맘대로의 생각으로 무화과를
탐닉했던 어린 날, 그때 그 기억들로 언제든 나는 돌아가 버리곤 한다.’
고향 산하에 오래된 수령의 나무를 그리는 최석우 작가.
뛰어난 묘사력을 그저 재현에 목적하지 않고 생명의 지극함을 표현하고자 혼신을 다하는 이름.
수많은 말은 그림과 자신만의 시간을 위해 마음에 담아둔 채 화면에 건져 올린 식물의 아우라만 묵묵히 증거가 되는 묵직한 이름.
익산 작업실에 잠깐 들렸을 때도 아네모네의 실핏줄 같은 꽃잎을 눈을 가늘게 뜨고 찬찬히 그리고 있던 작가의 겨울이 생각난다.
작가는 동백, 매화, 겨울을 이겨낸 꽃들을 그리며 작년을 보냈다.
최석우 작가의 일상은 담백하기 그지없다. 깨었을 땐 대부분 그림을 그리고 그림 그릴 생각으로만 일상이 채워져 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최소한의 직업을 한 달 중 며칠만 하고 밤낮 없이 거의 그림을 그린다. 빛을 받는 공기층까지 표현하고 싶었다는 최석우 작가.
작가는 밤새 그림을 그리고 동이 터올 때 잠을 잔다.. 그래서 카메라에 꽃을 담은 시각도 해가 넘어갈 때 즈음이라, 화려하기 그지없을 꽃이라도 보는 이로 하여금 옷을
여미게 하는 숙연함이 여겨지는 것 또한 최석우 작가의 봄꽃 展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이번 생에 주어진 화가라는 숙명을 인생 깊숙이 묵직하게 받아들인 의지를 찬찬히 증명하는 말수도 적은 최석우 작가가 낳은 식물들을 나는 옆에 두고 자주 본다.
공간이 떨어져 있어도 식물의 텔레파시는 자신을 담은 사진이며 그림에 여전히 살아있어 관계를 지속한다는 거짓말 같은 밝혀진 사실들을 읽으며 전율했던 시간이 훅 떠오른다.
세상에 많고 많은 것 중 생명의 지극함에 마음이 가고 식물을 통해 그 미시적인 세계를 표현하려고 했던 한 터치씩 공을 들였을 찬찬한 작가의 시선이 감지된다.
여전히 작가의 일상은 소란한 인간계에 속해 있기보다 정갈하고도 평화로운 식물들이 주는 에너지를 만끽하며 동공을 확장하곤 미시적인 그들의 세계로 미끄러져 들어갈 것이다.
우리는 작가를 따라 판에 박힌 현실에서 두려움 없이 문을 열어 다른 세계로 기꺼이 들어간다. 더할 나위 없을 완벽한 존재를 화면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외연만 옮기는
그림이 난무하는 까닭에 평소 꽃 그림과 풍경화는 갤러리 입구에서 휘... 둘러보고 그냥 빠르게 발길을 돌리곤 했었다. 역시 최석우 작가의 겨울을 이겨낸 꽃은 다르다.
공기층까지 표현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연구가 뵈는 최근작부터 어찌하다 보니 발표를 못 한 자목련까지 작가가 2006년부터 그려온 목련들이 걸렸다. 나무에서 피는 연꽃이라는 우아한
목련이 갤러리에 가득하다. 꽃말이 '고귀함'이다. 과연 어울리는 꽃말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태생적인 타고남이다. 사주팔자에는 9척 장사로 표현되나 현실에는 키가 작고
파리하게 노리거나 까무잡잡했던 어린 날이 있었다.
툭하면 하늘이 휘청이다가 삥 돌아 보이고 땅이 오르락내리락.
속은 체한 듯 불편했고, 세상이 살만한 곳이기를, 하루하루가 버겁든 병색이 짙었든 나는 중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 늘 자신을 스스로 저울질했던 것 같다.
서구적인 우아한 목련은 백일해를 앓아 기침을 자주 하는 내게 엄마는 목련차를 약으로 자주 주셨다. 모과 차와 함께 세트로 떠 오르는 내게는 우아한 관상용에서 한참 비켜난 신이
내 병을 고쳐주기 위해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꽃이었다. 환하게 크고 눈부시게 피어 학처럼 고고하다가 지저분하게 떨어져 버리는 목련을 보며 사춘기 시절 많은 생각을 퍽 진지하게 했던
것 같다. 가령 여자의 숙명 같은...
나이를 먹어서일까...
최석우 작가의 그림을 계기로 목련은 내게 완전히 달리 보인다.
짧은 기간 동안 고고한 아름다움으로 피었다가 처연하게 져버리는 목련처럼 절정일 수 있다면 충분한 삶의 이유라 끄덕일 수 있을 듯하니 말이다. 흰머리 나려고 어차피 살아왔던 것 아니냐...
그래서 머리 염색도 하지 않는다던 어느 날 담소를 나눴던 멋진 게스트처럼 삶은 매번 여러 각도로 우리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다.
최석우 작가의 목련은 그리 환하지도, 찬란한 아름다움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느낌이다. 작가는 정오를 훨씬 지난 햇볕이 넘어갈 때 즈음의 광선속에 있는 목련을 담았다.
생명의 지극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최석우 작가의 시선은 누구나 눈과 마음을 빼앗겼을 찰나의 아름다움에 비켜 있다.
살아가면서 진정한 '숭고'는 절정에 있지 않다는 것을 삶과 관계 속에서 뼈가 저리게 느낀다. 벽돌 한 개를 쌓듯 무게를 실감하며 시간이 비례하는 것이 내게는 삶처럼 비슷한 감정을
최석우의 목련에서 절감하게 된다. 자세히 봐야 예쁘고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던 시인 나태주의 시구처럼 매 순간 그때그때 고이는 인생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흡입하라는 신의 은혜를 깨닫는다.
사람 수만큼 세상에 지천으로 피어있을 흔하디흔한 꽃.
누구나 흔하게 그리는 꽃을, 화가의 눈과 화가의 손은 이렇게 다르구나…. 를 새삼스럽게 또 절감하며 따뜻한 웃음이 크게 번져 온다.
봄꽃 중에서 제일 먼저 핀다는 동백.
익산의 작가가 사는 아파트에 피어있는 동백은 바닷가에서 피는 동백처럼 이쁘게 피지 않는다고 오십 넘은 작가는 소년처럼 얼굴이 붉어지며 수줍게 말한다.
완벽한 붉음으로 꽃봉오리조차 뚝 떨어져 버리는 종말도 완벽함을 집요하게 보여주는 동백이 무섭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 했었다. 작가는 고향인 자신이 사는 익산의
아파트에 핀 수더분한 동백을 담담히 그렸다. 나는 지금에서야 부담스럽던 완벽한 꽃이 아닌 수더분한 아름다움을 입은 동백에 새삼스럽게 수줍은 눈길을 준다.
'애타는 사랑',' 열정' 여러 꽃말이 있으나 '누구보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가 마음이 닿는다. 인간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사랑이다. 여러 가지 사랑 중 가장
뜨거운 것이 에로스(아모르)다. 인간이 생명을 얻은 이유는 고른 감정을 겪어가며 구도의 길에 이르라는 신의 뜻이 있다고 믿고 있다. 뜨겁게 사랑하고 염원하고 이루지
못한 이유마저 이해하며 그래도 한 발 나아가는 마음 근육이 튼튼한 강건한 우리가 되길 기도한다.
꽃잎의 실핏줄까지도 그려낸 정성스러움이 돋보이는 ?최석우표 아네모네를 보자. '당신을 믿으며 기다립니다' 는 보라색 아네모네의 꽃말을 보며 느껴지는 처연함에 짠하다.
아네모네처럼 꽃말이 많은 경우도 드물다. 대부분 사랑을 이루지 못한 경우이고 보니 그 상실의 슬픔이 오죽할까. 보라색 아네모네에 붙여진 그 간절함이 마음을 저민다.
작가는 올라오는 싹을 그리고, 사프란에도 '생명'이란 명제를 붙였다. 당신은 진정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봄은 꽃은 늘 몸소 일깨워 준다. 보려고 하는 이에겐 세상의
사연만큼 또 다른 미감으로 감상할 수 있을 귀한 미감을 주는 꽃. 최석우의 꽃은 그렇다.
"봄꽃이 얼마 동안 피나요? "물었더니
"보름을 못 피워요."라고 답한다.
"그렇구나..."
아쉽고
애련한 이유가 인생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