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미향 展

조미향 초대전, 서울 갤러리 아트셀시

김은숙 (셀시우스/갤러리아트셀시 디렉터)



팽팽했던 것들이 느슨해지는 것.
'절대'라는 말이 줄어드는 것.
순서가 엉켜도 이해되는 것.
끝이 아님을 가슴이 아는 것.
주연에서 조연으로 돌아가는 것.
우주 일부라는 걸 끄덕이게 되는 것.

의미가 있었으나
꼭 그렇지 않았다는 궤변에도
노엽지 않은 것.
지금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는 것.

시간이라는 거대한 순리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절로 적어 내려가게 된다.
공간을 점유한 그 무엇에 사람들은 몰려들고 그 진위를 파악하기 위한 가동을 시작한다. 고유의 서사 상을 갖은 내러티브는 저마다의 우주에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건 벌레가 먹히건 그 자체의 설왕설래에 소요하는 총체적인 그 무엇을 `예술`의 범주에 가두며 소비된다.



현대미술은 우리를 그렇게 길들여 왔다. 그것이 무엇이든 영혼을 후 적시는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기를 강력히 원하며 필요로 모든 세계는 견고하게 움직이며 돌아간다. 마지막 문장은 수정해야만 할 것 같다. `영혼`이란 명사가 꼭 수반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무엇이든;;;

몰려가는 몸과 마음의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면 되는 것 같다. 그 이후를 잊어버리는 것은 어차피 같으니까….

장식의 기능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림의 진가는 늘 보는 이의 세계관과 진동할 때 비로소 일어난다. 미끄러지거나 맺히거나 폭발하는 영감의 시너지는 신이 존재한다고 우리를 늘 일깨워 준다. 내 작업은 마치 지도를 던져버린 여행자의 여행과 같이 진행된다. 빈 화면 앞에서 나는 첫발을 용감하게, 무모하게 내디딘다. 거기서 비로소 사건은 시작된다. 여행자에게 모든 순간은 최초의 것이자 동시에 조금 전의 사건들이 불러온 것이 된다. 지도를 따르는 여행은 진정으로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해 주지 않는다. 지도 없는 이 여행을 통해 나는 지층 아래 두더지의 몸짓과 공중의 독수리의 궤적처럼 서로 무심하게, 그러나 크게는 함께 존재하는 세계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다.`라고 조미향 작가는 적고 있다.

추구하는 것을 간파하기에 그렇게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지도가 없는 여행자라고 말했던 그림에 임하는 태도와 별다름 없이 주어진 것들에 충실하며 치열했던 지난 시간을 살아온 것처럼 그녀를 둘러싼 따뜻한 주변과의 소통을 이어갈 것이다.

서랍을 다 열어 놓고는 견딜 수 없다고, 하나씩 닫고 열고를 하지 않으면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다는 작가.
수많은 내성이 만들어 낸 내공임을 그 한마디에서 깨닫는다. 살아보니 큰일은 연달아 오지 않더라고 담담히 말씀하신다. 그림에 덜미를 잡힌 것 같이 꾸려왔던 지난 시간은 돌이켜 보면 운명이다.





명문학교의 국어선생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에도 그림에 대한 운명과 마주하기 위해 저녁엔 대학원으로 달려갔고 딸내미 뒷바라지와 작업실로 내달리는 걸 보고 학자인 남편 왈, 당신은 누가 쫓아오듯이 그림을 그린다며 염려가 가득했다고 한다.

심리학 교수였던 남편의 1주기가 얼마 전이었다. 심리학 박사 과정 중에 있는 출가한 딸과 예쁜 손녀를 보러 오지 않는다면 조미향 작가에겐 오직 그림만 삶에 남아있다. 끝까지 가보겠다고 교사 사표를 내고 임했던 그림은 벌써 개인전 30회를 훌쩍 넘겼다. 같은 그림으로 여기저기 걸었던 횟수가 아니다 보니 화우들에게서 그녀를 향한 경의를 읽기가 어렵지 않았다.

화면에는 장군 기질에다 호르몬을 포기할 나이에도 예쁜 감성과 소녀의 58년 감성을 드물게 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이 장치해놓은 수많은 신비를 인간과 시간 통한 은혜로움도 안다. 세상 다 산 것 같은 무료한 일상을 견디다가도 삶의 갈피 갈피에서 만나게 되는 인연들은 하느님이 보내신 나를 돌아보게 하는 수많은 천사임을 알게 되는 오늘이다. 내가 나를 빼앗기는 것과 함몰되는 것은 기실 똑같은 현상에 다름없다. 살다 보면 그렇게 되는 때가 분명 있다. 자의든 타의든 운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몰아치다 보면 스스로 감당해야 했던 시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갖는 그 강건함은 훈장처럼 어디서건 빛을 발한다.

그녀의 그림엔 낭만이 없다. 근원적으로 올라오는 해결해야 할 징글징글한 포효가 가득한 해부만이 절절히 전리품처럼 널려있다. 비극도 떨어져 보면 희극으로 읽힐 수 있음이 세상이다. 다 자신만의 우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추웠을 텐데, 아팠을 텐데, 제정신으로 어떻게 살았을까. 싶은 느낌이 크든 작든 쩌렁쩌렁 울고 있는 화면에서 보이고 들린다. 담담히 턱 놓아버리는 작가와 이런저런 얘기하며 깨닫는다. 언젠간 만나긴 해야 할 인연이었구나.

서로 해결해야 할 빚 없이 오래간만에 차나 한 잔 마셔도 될 인연은 참으로 즐겁기 그지없다. 전시 기간 내내 고스란히 닫아 두었던 그녀의 수많은 서랍을 하나씩 열어볼 참이나 이미 딱딱해져 버릴 만큼 단단해진 근육에 감춰있을 말랑한 우리의 회복은 시간문제란 생각만 든다. 우정을 키울 인연을 만나는 것은 참 기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