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 MI-HEE INVITATION EXHIBITION

주미희 초대전, 서울 갤러리 아트셀시



김은숙 (셀시우스/갤러리아트셀시 디렉터)

주미희 작가는 여고 1년 후배다.
대학교 후배이기도 하나, 조각과에 파묻혀 살던 그녀와 동양화 전공실에 있던 우리의 간극은 공허하게 넓었던 캠퍼스만큼이나 넓어 자신의 일에 몰두하고 살았던 지난날속에 서로가 오버랩되는 일이 드물었다. 고2때 담임선생님이 그녀의 담임을 맡기도하면서 이런저런 에피소드로 그녀를 기억했고 재수기간 고향의 화실에서 몇 달을 우린 수험생으로 같은 공간을 사용했으나 딱히 정서까지 공유될 그 무엇이 없는 채로 서로의 세계는 공존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강산이 두번은 바뀌었을 즈음...

내가 모교에 강의를 나갔던 마지막 수업이었을게다. 그녀의 전시 소식과 함께 10년의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지난 시간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녀의 전시가 끝나는 마지막날 시간을 맞추려 노력했으나 결국 갤러리 문이 닫혀서 작품을 못봤다. 갤러리 외벽에 붙어있던 포스터에 색색의 실로 작업했던 작업을 어렴풋 인상적이게 기억될뿐... 그렇게 또 시간은 십여년을 훌쩍 넘기고 비로소 나는 그녀가 끌어 앉고 있던 오랜 시간을 품은 작업물에 둘러 쌓여있다.

주미희 작가의 실작업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행되었던 조각계에서 성행되었던 부피의 부담을 확 덜어주며 실이란 오브재가 주는 해석이 여성에게 참으로 적합하다는 느낌이 왔다. 요즘은 프랑스에서 실작업을 흔하게 입체를 다루는 재료로 쓰지만 (정확한 데이타는 아니나) 나는 이십년전 한국 조각계에서 처음 보았고, 신선하기는 프랑스에서의 호평도 마찬가지였던 걸로 알고있다.

그녀가 택했던 극적인 컬러풀한 실들로 인해 복잡하고 무거운 인상이 강하게 뇌리에서 떠나지않았다. 사적인 감정을 피력하자면 "좀 편한걸 택하지..." 싶던. 현실적인 그녀의 안위가 미술의 기능에도 불구하고 염려가 됐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십년을 끌어안고 있어도 작품 하나 끝내기가 쉽지않은 작업. 정직한 감정을 실의 컬러로 나타내기위해 여적 스탭의 손도 빌지 못하거나 주저하며 작가의 표현에 의하면 '졸라맨' 같은 사람 형상에 오늘도 실을 감는 작가. 반백이 넘었으나 아직도 사회의 유연한 때?를 강력히 부정하는 종족이 있음을 주미희 작가를 보며 확인한다. 십년이 넘어가는 대학강의를 하면서도 초등학교 기간제 교사를 비롯해서 녹즙배달, 프로젝트 특강등 그녀는 마다않고 투명한 삶의 연명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건강하고 정직한 예술가다. 아이들과 철사로 수업 후 버려지는 철사가 아까워 작업실로 갖고와 조물락 거리며 마음이 가는대로 무의식을 끌어내는 방편으로 일기처럼 풀어갔다는 철사 드로잉은 많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음에도 담백하다.

다녀간 지인중 한 분이 실작업이 그로데스크해서 집에 못걸어둘 것 같다고 해서 희미하게 같이 웃기도 했다. 어쩌면 삶은 얼마나 그로데스크한가... 졸라맨같은 수많은 인간군상이 각기 다른 색으로 옷을 입고 무더기로 달라붙은 형상들은 살기위해 악다구니치는 날 것의 인간세계를 어렵지않게 보여준다. 생식세포인 정자처럼 뵈기도해서 강한 생명력으로 단단히 얽혀진 운동성이 돋보이는 조형작업은 크게는 얼굴, 파랑새, 나비, 얼굴의 뼈인 해골로 여러 모양의 덩어리들로 형태를 나타냈다. 신기루처럼 언제든 해체되어버릴 것같은 생명의 무더기들은 그저 서로 포개진듯이 연약해보이기도 하는 것이 마치 필요에 의해 이합집산하는 연약한 인간의 생리를 보는듯하다.

장식되기 적합한 작품의 범주를 거부하는 작가의 세계를 표현한 점은 그런대로 적중한 셈이다. 자본주의에서 나의 일이 돈으로 환산되는 것을 '프로'라고들 얘기 한다. 내안에 것들이 거짓이라는 순간이 올때 본인이 생각하는 예술은 기능을 잃었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순간이 오면 그때가 미술과 작별하는 시간일거라 작가는 종교처럼 맑게 말한다. 예술에 빚진 것없이 떠나고플때 손을 털 수있는 삶이란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자유롭다. 파우스트의 갈등에서 자유로운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미희는 별종임에 틀림없다. 아니 별종이 아니라, 모두가 변절의 한쪽에 발을 올려 놓는 변명많고 자기 합리화에 바쁜 요즘에 보호해야할 순토종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오늘도 단내나는 뜨거운 삶의 현장에서 오롯이 예술을 위한 부단한 내면풀이는 건강하고 씩씩하게 계속되고 있다. 미련하리만치 우직한 예술행위가 그녀의 삶에 뜨겁게 보상되기를 강력히 희망하는 것이 소극적인 내역할의 전부 일른지 모른다. 오늘도 뜨겁기는 그 누구의 삶도 저울질 할 수 없으리라. 다만 네가 내게 위로가 되고, 그 진솔함에 같이 웃을 수 있는 순간이라도 나누는 너와 나 이기를 바래본다.



주 미 희. Ju mi-hee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과 졸업
프랑스 파리 8대학 조형예술과 석사 졸업

개인전 18회(광주, 서울, 부산, 강진, 장성, 담양)
단체전 150여회 이상 참여

현: 힌국미술협회, 전국조각가협회, 광주전업작가회, 백학조각회, 남도조각회, 광주. 전남여성작가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