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기억’이라는 테마로 김유준 작가는 우리가 사는 우주를 끊임없이 반추시키곤 했다. 돌이켜보니 삼십년이다. 하늘과 땅의 신간 역할을 했다는
솟대를 비롯해서 90년대인 첫 전시부터 그의 화면 가득, 하늘에 닿을 만큼 신명나게 배치된 붉은 소나무가 뿜는 기상이 아직도 소스라치게 달려든다.
무등산이 놀이터였다는 그는 유년기에 섭취되어 발아되었다고 여기기엔 그의 화면속의 다정한 산하인 듯 뵈나, 높고 깊은 바다가 주는 호연지기는
웅숭깊다.
1984년 그의 첫 전시부터 하늘의 별과 소나무, 산과 물 같은 화면에 병치시켰던 이미지를 나열해보면 우리의 산하에 발을 딛고 우리 민족의 정서를 대변했던
이름들로 가득하다. 하물며 하늘을 수놓았던 별자리도 기원전 3000년경 하늘을 관찰하여 고인돌에 천문도를 새긴 우리 선조의 과학 기술이 집약된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
근거한 별자리들을 그려놓았다.
다수의 평론과 매체가 그의 그림을 논했고 기억속의 사물들이나 추억처럼 읽히거나 해석되어있다. 90년대 초에 “예술이라는 것이 현재와 미래의 시간적 한계를 넘나들 수
있는 제도적 장치임을 믿고 싶다.”라고 김유준은 썼고, 옥타비빠스의 ‘태양의 돌’이란 시집에서 [나는 시간이 나를 통해 살도록, 되살아나도록 하기 위해 글을 쓴다.
라는 대목을 자주 언급하곤 했다.
‘나의 하늘 이야기’로 언제나처럼 부지런히 작가는 2016년의 작업들을 내놓았다. 우선 전작과 달라진 부분을 열거하자면 화면은 한층 단순하게 정리되었다. 그의 우주나
별로 대변되는 원형의 점들이 더 커졌고 별자리들은 원형보다 더 멀리, 작게 그만이 아는 세상에 없는 별자리로 그려졌거나 카시오페아, 북두칠성이 그려졌다.
일곱 개의 크고 작은 검은 원들이 하늘 위에 두둥실 떠 크게 그려져 마치 북두칠성의 만유인력이 나를 끌어당겨 빨려드는 느낌을 준다. 처음 인물들이 간간히 뵈고 그가
우리의 문화를 직접 발품을 팔아 만지고 정신을 수혈 받았던 흔적들을 이제는 옛 시간에서 길어 올린 이미지를 슬쩍 차용하거나 대치하는 이중의 장치들로 그가 숨어버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크게 보자면 전작의 시점은 작가가 땅에 발을 딛고 하늘과 만물이 어우러져 별이 멀게 만 보였는데, 이제는 내가 살았던 시간과 시대가 멀어져 추억처럼 나의 뼈와 살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바라보는 시점이랄까...
김유준이 시간여행자라는 판타지 같은 가설이 그가 그린 동그란 별이거나 우주처럼 두둥 떠오른다. 장난처럼 가정했는데 그가 시간 여행자라는 가설의 안경을 쓰고 보면 아주
소상히 어렵지도 않게 이미 1984년부터 화면에 그의 정체를 밝혀 놓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인간중심적 사고로부터 벗어나 인간과 자연이 상호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한다는 자연합일사상을 그림으로 펼쳐놓았던 시간 여행자 김유준은 이제 멀리 별자리로만 뵈던 그만의
우주가 커졌다. 나를 비출만큼. 내가 살고 놀던 익숙하거나 다정했던 자연과 운주사의 미륵을 통해 보여주는 용호의 세계를 짐작케 하려는 단서와 날씨가 추우면 추울수록
사람들은 더욱 따스함을 그리워하는 추운정경을 그린 세한도는 김정희의 시간대로 우릴 안내한다.
다른 별에서 온 '어린왕자'를 저술한 생택쥐베리는 화가가 되고 싶었으나 비행사가 되어 1944년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백년이 앞선 시간대로 돌아가
사대부집안의 자손이었지만 생계를 잇기 위해 중인들이 주를 이루는 도화서의 화원으로 들어가 주목을 받았던 당대의 화원 겸제가 되어 인왕제색도를 그린다.
또 그는 정조 때 수원성을 지키는 군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가정을 하고보니 기원전 3000년대부터 1500년대, 1800년대, 1900년대를 아우르며 시간여행자인 김유준은
단기연호로 짐작되는 역사관과 ‘시간기억’ 이라는 명제를 그린 그림천체를 아우르는 메타포는 이미 은유가 아닌 팩트가 되는 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금색이나 멀티컬러, 블랙의 필름인
시트지가 그의 우주로 대변되는 둥그런 원형에 붙여져 있어서 투영된 실루엣은 마치 일루젼 처럼 어룽거리며 본연의 나의 모습이란 무엇일까? 잠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를 준다.
그를 따라 나선 시간여행을 하며 그가 고민하거나 애정 했던 모든 것들이 옛 얘기가 아닌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는 순간이라는 걸 감지한다. 갈피갈피 시간을 견디고 그 시간대를 겪고
보면 삶의 양식은 달라 입고 있는 복식과 어법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으나 사람 사는 모양새는 하늘아래 그닥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태평성대에도 정신을 고르는 예술가의 삶은
치열하고 고달프기가 일쑤다.
형이상학으로 응축된 내면의 사리들을 펼치는 이들이 예술가이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이 있듯, 어려운 시간 속에 있다면 그들의 작업 안에서 위로받고 침잠되는 가운데 답을 얻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예술의 힘이요, 참 기능이란걸 전하고 싶은 가을이다.
김유준 약력
1957년에 태어나 청소년기 광주에서 성장하였다.
홍익대 미대 회화과와 동대학원에서 수학하다 서울에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개인전 38회 (표갤러리, 선화랑, 박영덕화랑, 갤러리일호, 청화랑, 가인화랑, 오끼나와글로벌갤러리, 송원화랑, 수화랑, 갤러리이콘 등)와 국내외단체전 450여회를 통하여 활동하고 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과 운영위원을 역임하였으며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겸임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