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용 작가, 'MATRIX 전'
신문용 초대전, 서울 갤러리 아트셀시
김은숙 (셀시우스/갤러리아트셀시 디렉터)
'행렬을 나열하다 보면 서로간에 형태가 이뤄지고 그 형태들이 집단으로 또 다른 이미지를 부활시키는 형상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지나간 일들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자연스런 붓끝의 촉감을 감지하며 화면에 남겨진 수많은 자국은 결국 붓과 먹이 가지고 있는 기본 특성의 물성적 효과에다 자유분방한 붓 놀림의 조화가 되는 연속성의
이야기를 담고 싶을 뿐이다.'
-신문용-
부쩍 뻑뻑해진 눈을 위해 루테인 한 알을 삼킨다. 몸뚱이와 오감으로 하는 업이라 온몸의 촉수가 곤두서는 느낌으로 연말을 맞는다. 2017년 아트셀시 전시로는 마지막을 장식했던
신문용의 matrix전이 막을 내렸다. 연륜이 주는 힘이란 일정한 행렬에서도 어김없이 발견된다. 노작가가 한점한점 점을 찍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음을 모두었을 matrix는 적잖은
수행의 소산이란 생각으로 숙연해진다. 인문학적으로 읽히는 점의 규칙과 공간을 따라가며 나는 인생의 어디쯤에 와 있을까를 끊임없이 자문해보았던 시간이었다.
파도로 대중에게 지칭되던 wave 작업을 일생 그렸던 그다. 나이프로 규칙적인 행렬이 가해졌던 그의 추상적인 작업을 수많은 평론가들과 대중은 '파도'와 '바다' 로 인식했고 다양한
바다의 빛깔과 파도의 높낮이로 주목하며 감동했다. 정작 작가는 망망한 바다를 보고 재현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도 말이다. 천경자 선생님이 홍익대학교에 계실 때 동양화 전공으로
입학했던 신문용은 천경자 교수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서양화로 장르를 바꾸어 일생 서양화의 화법으로 그림을 그렸다. 푸른 물감에 둘러 쌓여 물감을 바르고 사포질을 하며 수많은
wave를 그렸다.
그의 점을 처음 만났던 몇 년 전이 떠오른다. 하남 문화예술회관에서 작가의 방을 재현했던 초대전이었다. 어둠처럼 뵈는 블랙 화면에 밝은 컬러의 점들이 마치 우주를 유영하다 모여든
은하수처럼 무심하게 펼쳐져 있었다. 드로잉처럼 여백위에 얹힌 먹의 불규칙적인 점들은 편안하고도 자유로웠다. 일생 wave를 그렸던 그의 화면이 오버랩 되면서 밤바다를 그린 듯
달빛에 반짝이는 물비늘 같은 느낌을 먹의 흔적은 주기도 했고, 어둠속에 빛이 섬광처럼 일어날 때 화면에 찍거나 흘린 수많은 점들은 감정이 되거나 시가 되어 번져가거나 얹혀서
그대로 언어로 읽혔다.
그는 갑상선 암으로 임파선까지 번진 암을 제거하기 위해 몸에 칼을 다섯 번이나 대는 수술을 했다. 후학을 지도했던 대학 퇴직 후 작업실에서 그를 둘러싼 그림은 화선지와 먹작업이
수북했다. 필자가 동양화 작가인지라 화선지의 여백과 뚝뚝 떨어뜨린 먹이 건네 오는 아우라에 절로 미소가 번지던 순간이 떠오른다. 연륜이란 그런 것인가 보다. 평생을 서양화법으로
작업을 했던 그가 다만 화선지와 먹으로 재료를 바꿨을 뿐이라 여기고 싶었으나 점이 주는 무심한 먹의 흔적은 수많은 의미를 함축한 동양화의 묘미를 듬뿍 느끼게 했다.
캔버스에 아크릴로 표현된 점의 행렬엔 행간의 조절된 공간과 의도가 wave와 이미지만 다를 뿐, 추상의 matrix는 유사한 그 무엇을 결합시키는 친절한 뇌의 기능으로 울울한 숲의
전경을 유추하게 하거나 웃는 사람의 표정으로 인식하게도 한다. 솔리드한 배경위에 색즉시공을 벗어버린 점의 행렬은 암호처럼 일정치 않은 심리적인 간극을 끊임없이 양산하며 화면을
부유하거나 확대된 사진의 화소처럼 읽힌다. 마음이 복잡해도 보여 주지 않거나 가까이 다가가도 보여 주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나 심리적인 소용돌이가 가라앉은 어떤 순간, 점의 행렬이
형태를 보이고 그 형태는 그 무엇이 되어 긴장하거나 서툰 나를 녹인다.
허물 져도 틈이 있어도 괜찮다고, 이쯤에서 비어도 틀린 게 아니라고 내 공백의 모양은 이랬노라 고백한다. 심리적인 교집합으로 포개진 경험의 공유는 평화롭고도 순하다. 친절하게 단박에
읽혔다가도 테세우스가 갇혔던 미로처럼 무심히 찍힌 점의 행렬은 전체적으로 보면 정해진 질량의 규모가 이해되다가도 미묘하게 서로 다른 크기와 점의 숫자에 어리석게 갇히게 된다. 설핏
"도를 아십니까?"라고 물어오는 것만 같다. 인간사를 모스부호 같은 행렬로 찍어낸 신문용의 점들은 감각을 넘어버린듯 하다.
여러 경계에 있는 그의 작업은 드러나 보이거나 묻히지지도 않아 그야말로 감각의 끝인 경지에 다다른 느낌이다. 노작가의 새로운 작업은 시작된 연예의 증상을 동반한다. 신명이 나있고 아쉬워
쉬이 잠을 못 든다. 퇴근 시간에도 아이디어가 실현되기 전까지 끝내 못 헤어지고 작업실을 벗어나면서도 붓과 소품을 챙겨서 집까지 묻어가는 지경이 늘어간다. 입이 부르트는 걸 볼 때마다
전시를 재촉하며 불을 지른 일말의 책임감으로 마음이 짠하다. 눈이 빠질 듯 성스럽게 그려낼 그의 새로운 연인의 이야기를 오래도록 듣고 싶어진다. 나이를 잊어버린 노교수의 연서가 해피엔딩이길
기원한다. 강남의 갤러리 아트셀시에서 열렸던 신문용의 전시는 강원도 홍천에 위치한 힐리언스 선마을에서 1월과 2월 두 달에 걸쳐 더 깊은 얘기들을 전할 작업들로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SHIN MOON YONG, 신문용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대학원 회화과 졸업
개인전 44회
선화랑, 미술회관, JBC동경화랑, 필립강갤러리, COLLECTION 나고야화랑, 이마주갤러리, 국립현대미술관, ROBENSON 뉴욕화랑, 오승우미술관, 갤러리아트셀시
국립현대미술관 이달의 작가전
서울국제현대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 주영문화원, 런던
진경, 그 새로운 제안전, 국립현대미술관
벨기에 국제현대미술제, 엔디워프
광주 비엔날레
인도 트리엔나레
KIAF, SOAF, KCAF
한국 국제 드로잉전, 한가람미술관
원더플 픽쳐, 일민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신소장품전
이미지 추상과 자연전, 안양시립미술관